“장애인도 살고 싶다…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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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도 살고 싶다…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0 3,637 2012.11.27 11:18

생존권 보장을 바라는 장애인들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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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에스캅 장관급회의가 열린 11월 1일 인천 송도에서도 故김주영 활동가와 동료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나 임채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침묵했고, 장애인들의 외침을 묵살하려는 공권력의 벽은 뚫을 수 없었다.


 


임 장관이 있던 2층 행사장으로 가는 길인 엘리베이터, 계단, 에스컬레이터 등은 모두 차단당했고, 장애인들의 절규와 외침만 송도 컨벤시아 안에서 메아리칠 뿐이었다. 그래도 그들은 포기할 수 없었다. 억울한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었던 동료가 아직 가슴 속에 남아있기 때문에, 그녀의 죽음은 곧 그들의 현실이기 때문에…. 그들의 목소리는 해가 질 때까지 계속됐다.


 


“활동보조 24시간 보장하라! 장애등급제 폐지하라! 부양의무제 폐지하라!”


 


11월 1일 오전 9시 유엔에스캅 28개 회원국의 장관과 대표단 등 380여 명이 참여한 ‘유엔에스캅 장관급회의’의 막이 올랐다. 이번 장관급회의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 장애인들의 권리실현을 위한 전략수집이 논의되며, 앞으로 10년 간 에스캅 회원국·준회원국이 시민사회단체(CSO), 국제기구 및 정부 간 기구와 함께 추진할 ‘인천전략’이 선언된다.


 


이날 오전 10시 열린 이번 대회 공식 기자회견에서 임채민 장관은 “정부주도의 정책 추진이 아니라 장애인 당사자와 관련단체의 의사와 참여를 존중해 전략이행의 전개사업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임 장관의 말은 그동안 장애계의 요구에 대한 복지부의 태도와 이날 현장의 분위기로 봐서 믿기 어려웠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등 장애인 단체들은 지금까지 수년 동안 장애등급제 폐지, 부양의무제 폐지, 활동보조지원제도 개정 등을 요구했고, 복지부 장관과 실무 담당자와의 면담을 지속적으로 요청해왔다. 하지만 복지부는 답변을 피하거나 예산이 없다는 핑계로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게다가 이날 오후 1시 유엔에스캅 회의장 1층 로비에서 열린 장애인활동지원 상한 제한·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촉구 기자회견에도 임 장관은 이들에게 단 한 번도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이날 임 장관은 기자회견이 시작되면서부터 격렬한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중에도 2층 회의장에 있었다.


 


전장연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필요한 사람에게 하루 24시간 활동보조를 보장할 것 ▲활동보조 대폭축소 계획을 중단하고, 확대계획을 마련할 것 ▲본인부담금 폐지하고, 활동보조를 권리로 보장할 것 ▲장애등급제 폐지하고, 대상제한 폐지할 것을 요구했다.


 


이 같은 장애인 단체의 요구는 지난 10월 26일 故김주영 활동가가 활동보조 시간이 부족해 불길 속에서 홀로 안타깝게 사망한 이후 그 필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전장연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 앞서 오전 9시께 1층 로비에서 운집하는 장애인들을 사설 경호원들이 막아서자 故김주영 활동가의 죽음을 언급하며 “만약 보건복지부가 5년 동안 우리가 이런 사태에 대해서 얘기할 때 조금만 귀를 기울였다면 이런 죽음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녀는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시설에 나와 자립생활을 하다 목숨을 잃었다”며 “이 문제에 대해 보건복지부 장관은 공식적으로 조의를 표하고 우리의 요구사항에 대해서도 답변과 면담 진행을 약속해 달라”고 주장했다.


 


이후 오후 1시 열린 기자회견에서는 70여 명의 장애인 단체 활동가들과 유엔에스캅 대회 경비원·관계자들이 대립한 가운데 팽팽한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대회 관계자들은 휠체어 장애인들이 2층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엘리베이터의 입구를 철저히 막고 있었고 에스컬레이터 입구는 다수의 경찰과 경호원이 배치돼 있었으며,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모두 봉쇄한 채 막고 있었다.


 


기자회견에서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명애 대표는 “우리는 이 건물을 달라고 온 것이 아니라, 화장실 마음대로 갈 수 있고 김주영 동지처럼 죽음의 위험에 처해있을 때 옆에 있어줄 활동보조를 달라고 하는 것이다”라며 “하루 세끼 제 때 먹을 수 있고 화장실 가고 싶을 때 갈 수 있는 등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기초적인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장애인을 차별하는 이 세상을 바꿔야 한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으로 바꿔야 한다. 다시는 주영이와 같은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주영이처럼 그렇게 비참하게 생을 마감해야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소리쳤다.


 


파키스탄에서 온 지체장애인 노레이 씨는 “장애인의 10년 계획에 대해 얘기를 하는데 왜 장애인 당사자가 배제돼야 하는가”라며 “이런 직접적인 차별을 당하고 있는 상황을, 우리의 메시지를 위에 있는 사람들도 정확히 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이것은 인권 유린이다. 정부 보고서만 보지 말고 우리가 여기서 하는 말을 세계 각국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들어야 한다. 모든 것이 제대로 잘 되고 있다면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수많은 사람들이 24시간 활동보조를 받지 못해 죽고 있다. 그런데 이것의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나.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지금 느꼈던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정책 형성 과정에 장애 당사자가 참여하지 않는다면 그 정책은 무의미하다”라고 의견을 전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 사무국장은 “복지부 장관은 복지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한 장애여성이 화염 속에 죽어간 것에 대해 책임지고 있지 않다”며 “우리는 오늘 장관의 얼굴을 보러 온 게 아니라 책임을 지지 않는 장관에게 장관으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얘기하러 왔다. 책임지지 않는 장관, 장애인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는 장관은 자격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세계재활협회 앤 호커 전 회장은 “유엔 CRPD(장애인 권리협약) 19조는 자립생활을 할 권리의 모든 책임은 국가에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장애인들의 자립생활을 영위하는 데 어떠한 제한 없이 그 체계를 마련하는 것은 모든 국가의 의무”라고 설명했다.


 


부산삶장애인자립생활센터 조상래 소장은 “이명박 정부는 사람을 죽이고 있다. 24시간 활동보조만 있었다면 김주영 활동가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언제까지 예산 부족으로 장애인들이 죽어야 하나. 예산이 없는 것이 아니라 예산을 엉뚱한데 쓰기 때문에 없는 것이다. 복지부 장관은 더 이상 우리를 죽이지 말라”고 외쳤다.


 


방글라데시 장애여성재단 아쉬라 편 나하 대표는 “정부가 제대로 된 지원을 했다면 어떻게 그녀가 혼자 집에서 죽어갈 수 있었나. 국제협약상에서는 장애인들의 살 권리, 장애인들이 보조를 받을 권리 등을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어떻게 이러한 지원조차 하지 않고 나이 어린 김주영 씨를 죽게 만들었나. 한국정부에게 방글라데시 장애여성재단의 대표로서 강력하게 말한다. 장애인들을 죽게 내버려두지 말라. 장애인들은 모두 살 권리가 있고, 보조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말하며 흐느꼈다.


 


세계재활협회 비너스 일라간 사무총장은 “우리는 김주영 씨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현재 많은 국가들이 장애인의 권리에 대한 협약을 채택하고 비준하고 있다. 한 국가, 한 지역사회의 모든 사람이 받는 혜택은 장애인들도 똑 같이 누릴 권리가 있다. 나는 우리가 단결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함께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기자회견을 마무리 한 뒤 기자회견에 참석했던 장애인들과 활동가들은 유엔에스캅 장관급회의가 열리고 있는 2층 회의장으로 진입을 시도했다. 이는 그들의 요구사항을 회의장에 있는 임채민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주최 측에서는 이미 이들이 진입할 수 있는 모든 통로를 차단했으며,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 모두 전원을 내렸다. 또 경호원과 경찰을 동원해 무리하게 이들을 진압했으며, 책상과 의자를 이용해 휠체어와 사람들을 막아섰다. 이 때문에 엘리베이터 출입구와 에스컬레이스 출입구는 일대 큰 혼란에 휩싸였으며, 곳곳에서 크고 작은 몸싸움이 벌어졌다.


 


그러나 주최 측의 저지선은 쉽게 무너지지 않아 긴 시간동안 밀고 당기기가 계속됐다.


 


결국 사복경찰과 일부 용역업체 직원으로 보이는 무리가 현장에 투입됐고, 장애인들과 활동가들을 무력으로 끌어내려 시도했다. 그러나 이들의 완강한 저항으로 금세 물러나고 말았다.


 


지지부진한 싸움이 계속되던 중 오후 5시 30분께 전장연 박경석 대표가 2주 내로 면담할 것을 복지부에게 약속 받았고, 5시간여에 걸친 긴 투쟁은 끝을 맺었다.


 


“장애인 당사자와 관련단체의 의사와 참여를 존중”하겠다던 임채민 장관 발언의 진실 여부는 곧 진행된 면담에서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출처 = 함께걸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