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ㆍ뇌병변 딛고 일반경제 분야 공채 선발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세계 경제위기 예방에 젊음 불태우고 싶다"
(서울=연합뉴스) 이강원 방현덕 기자 = "시험문제조차 제대로 읽지 못하는 신체적 약점을 암산과 빨리 풀기로 극복했습니다"
내로라하는 인재들이 모이는 한국은행 공채시험에 `중증종합1급' 장애인이 당당히 합격했다.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08학번인 박기범(23ㆍ남)씨가 주인공이다.
최고도의 안경을 쓰고도 시력검사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시력이 약한 박씨는 26일 `어떻게 시험문제를 풀었느냐'고 묻자 "남들처럼 읽지 못할 바에는 빨리라도 풀어야 한다는 생각에 평소 암기력과 암산력, 통찰력을 길러왔다"고 답했다.
안경을 쓴 채 돋보기까지 들고 와 시험을 치렀지만 다른 응시생보다 문제를 읽는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는 자신만의 비결인 셈이다.
중학교 시절 뇌출혈까지 겹쳐 뇌병변이 생기면서 몸의 움직임까지 자유롭지 못한 박씨는 평소 가장 난처했던 일은 `물건이 떨어졌을 때'라고 소개했다.
"어떤 물건이라도 제 손에서 떨어지면 도대체 보이지 않아 찾지 못하죠. 그럴 때마다 주변에 계신 분들이 찾아줘 주변 분들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됐다"고 회상했다.
한국은행은 2011년 2급 장애인을 채용한 적이 있지만 1급 중증 장애인을 뽑은 것은 박씨가 처음이다. 시각장애ㆍ뇌병변 장애를 딛고 공채에서 기적을 이룬 것이다.
최종 합격 통보를 받은 지난주에 부모님의 생신이 걸쳐 박씨의 기쁨은 배가 됐다. 아버지는 20일, 어머니는 22일이다.
"합격 통보를 받은 날이 22일이었으니 정확히는 어머니 생일선물이지만, 아버지에게도 선물과 같았을 것"이라고 활짝 웃었다.
그는 장애가 불편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자라면서 점차 무덤덤해졌다고 했다. 암기력ㆍ암산력ㆍ통찰력을 길러 장애를 극복하려 했듯이 집중력 역시 성장의 발판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몸의 불편함을 극복하려고 의도해서 집중력을 길렀습니다. 전남 화순 능주고등학교에서 처음에는 전교 180명 가운데 160등이었지만 집중해서 공부하다 보니 졸업 때는 전교 5등까지 올랐다"고 말했다.
그래서 올해 취업준비 때도 다른 기관이나 회사는 아예 지원하지 않고 한국은행 단 한 곳에만 집중했다.
이런 집중력 때문에 `멀티플레이'를 못해 지금까지 `여친'을 사귀지 못했다. "한은에서 일을 시작하면 성장기에 겪었던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세계적 경제 위기를 예측해 대응하는 일에 젊음을 불태우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런 각오에 집중하다 보면 당분간 여친을 사귀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박씨는 2008년 성대 입학 당시에도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올해 첫 1급 중증장애인을 선발한 한은은 박씨의 특수한 사정을 고려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부서에 배치할 계획이다.
조만간 선발할 6급 직무직 15명 가운데 3명을 장애인에게 할당하는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문호를 더욱 넓힐 예정이다.
지금까지 경제ㆍ경영ㆍ법ㆍ통계ㆍ컴퓨터 등 5대 전공에 한정해 신입직원을 채용했던 한은은 올해 처음으로 `자유전공' 분야를 신설, 3명을 뽑았다. 이들의 전공은 수학ㆍ노문ㆍ중문학이다. 평소 문사철(文史哲)을 강조해온 김중수 총재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다.
출처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