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간호사들 '의료수어' 삼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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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간호사들 '의료수어' 삼매경

0 2,870 2015.04.06 09:23
사람이 살다보면 아프거나 다치거나 병이 들 수가 있고 그럴 때 사람들은 병원을 찾는다. 장애인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지체장애인이나 시각장애인은 별 문제가 없겠지만 청각장애인 즉 농인(聾人)은 다르다. 의사나 간호사가 수화를 잘 모르므로 농인은 병원에 가더라도 자신의 통증을 잘 알릴 수가 없다.



춘해보건대학교 간호학부에서 ‘의료수어’ 강의. ⓒ이복남에이블포토로 보기 춘해보건대학교 간호학부에서 ‘의료수어’ 강의. ⓒ이복남
현재는 몇 군데 병원에 수화통역사가 있어 농인들은 수화통역사가 있는 병원을 찾고 있다. 몇 달 전 한 농인이 병원을 간다기에 강주수(춘해보건대학교 겸임교수) 선생이 동행을 했단다.

병원에 가면 대부분의 의사가 제일 먼저 묻는 말이 “어디가 불편 하십니까?”이다. 수화통역사도 그 말을 그대로 수화로 통역해 주는데 그렇게 했을 때 농인들은 그 말을 잘 모른다고 했다. ‘병원에 오는데 불편했나?’로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농인들에게는 ‘병, 무엇?’ ‘아프다, 무엇?’ ‘병, 어디?’로 물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로써 의사를 전달하고, 시각장애인도 비록 볼 수는 없어도 듣고 말 할 수 있지만 농인은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한다. 그래서 그들만의 농문화가 존재하는데 비장애인들은 농문화가 존재하는 농세계를 잘 모른다는 것이다.

강주수 선생이 춘해보건대학교 간호학과에서 ‘의료수어’를 강의한다고 했는데 필자도 궁금해 하던 터라 학기가 시작되기를 기다려 얼마 전에야 ‘의료수어’를 보러 갔다. 강주수 선생이 학생들에게 미리 말을 해 논 상태라 학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강의실 뒤에서 강의모습을 지켜봤다.

농인의 언어는 건청인의 언어체계와는 다르다. 젊은 농인들을 글을 쓰기도 하지만, 어르신들은 글을 쓰더라도 조사 없고, 토씨 없고, 의미변화도 없는 등 수화처럼 단어의 나열식으로 쓰기도 한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에는 가끔 농인들은 편지나 팩스로 상담을 의뢰해 오기도 했는데 필자도 그 의미를 잘 몰라서 강주수 선생에게 문의하기도 했었다.



‘아사람’(좌), ‘섹스(性)’(우). ⓒ이복남에이블포토로 보기 ‘아사람’(좌), ‘섹스(性)’(우). ⓒ이복남
농인들이 말할 때 수화는 되도록이면 짧고 간략하게 표현하는데 예를 들면 농아(聾啞)는 ‘귀와 입을 막는 것’으로 표현한다. 그런데 듣는 사람을 뜻하는 건청인(健廳人)은 귀를 돌리는 것이 아니라 오른손 손가락을 구부려 입 앞에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빙글빙글 돌린다. 입에서 소리가 나온다는 모습으로 아~ 발성이 되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대부분의 농인은 귀는 잘 사용하지 않고 입만 사용해서 ‘아사람’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른손 손가락을 구부려서 입 앞에서 빙글빙글 돌리면 ‘아사람’이 되지만, 코앞에서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면 섹스(性)를 나타내므로 조심해야 한다고 해서 학생들이 한 바탕 웃기도 했다.

‘의료수어’는 간호학과 2학년 1학기의 선택과목이라는데 50명씩 두 번 강의를 한다. 필자가 갔을 때는 두 번째 반의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의료 용어는 한자나 외래어가 많아 수어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수어가 없을 때는 지화로 표시를 한단다.



위내시경을 말하는 박지혁 총대.  ⓒ이복남에이블포토로 보기 위내시경을 말하는 박지혁 총대. ⓒ이복남
엑스레이는 두 손을 X로 만들고, 병을 진단하기 위한 검사로 CT와 MRI가 있는데 CT와 MRI를 표현 할 때 CT는 돈이 싸다 MRI는 돈이 비싸다로 구분하고 있단다. 임신은 여자가 배가 볼록하다고 하고 양수검사는 배 안의 물을 검사한다고 했다.

강주수 선생은 그가 알던 농아가 이가 아파서 이를 치료하러 치과에 갔는데 의사와 간호사를 보니 이를 뺄 것만 같아 무서워서 그냥 치과를 나왔고, 그러고도 몇 년이 지난 후에야 수화를 아는 치과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제야 치료를 받았다고 했다.

쉬는 시간에 박지혁 총대를 만났다. 사진을 찍기 위해 수화를 한 가지만 해달라고 했더니 위내시경을 수화로 했다. 위내시경은 1지를 입안으로 넣어서 위까지 내려오는 모습이다.

보통사람들은 손가락을 가리킬 때 최고가 엄지이고 그 다음이 검지, 중지, 약지, 그리고 새끼손가락이다. 그런데 수화에서 손가락은 검지부터 시작해서 검지가 1지이고, 중지가 2지, 약지가 3지, 새끼손가락이 4지이고, 그 다음에 다시 돌아와서 엄지가 5지이다. 숫자 1, 2, 3, 4, 5도 같다. 수화에서도 최고라는 표시는 엄지를 내 보이는데 이때의 엄지는 세우는 것이 아니라 엄지는 옆으로 눕히는 것이란다.

필자는 박지혁 총대에게 수업에 대한 소감을 물었다.

“예전에 한번 농아 분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 때는 수어를 몰랐습니다.”

“지금이 2학년 1학기인데 졸업 후 일선에 나갈 때쯤이면 다 잊어먹지 않을까요.”

필자가 우려 하자, 여름방학 때 농아단체에 가 볼 예정이란다.



‘의료수어’를 공부하는 학생들. ⓒ이복남에이블포토로 보기 ‘의료수어’를 공부하는 학생들. ⓒ이복남
이에 대해 강주수 선생은 학생들이 몇 년 씩 영어를 배워도 나중에는 다 잊어 먹어서 제대로 써먹지도 못하는데 수어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래도 ‘의료수어’를 배운 간호사들은 병원에서 농아들을 만나도 당황하지 않고 최소한의 수어는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간호학부 김금자 학부장은 간호사가 병원에 근무하게 되면 어떤 대상자(환자)가 올지 알 수 없는 일인데, 병원에 농아들이 찾아 왔을 때 어려움이 많다는 것을 알고 10여 년 전부터 의료수어를 하고 있다고 했다.

간호사가 청각장애인 환자의 고통이나 아픔을 좀 더 잘 들어 줄 수 있기 위해서 ‘의료수어’를 하고 있는데, 누구라도(청각장애인) 소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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