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경계, 최중증장애인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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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의 경계, 최중증장애인 절규

0 3,101 2019.03.29 09:02

삶과 죽음의 경계, 최중증장애인 절규



5년간 활동지원사와 생활, 노동법 개정 ‘목숨 위협’



“중증장애인 생명권 보장” 국민청원·인권위 진정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9-03-28 17:20:46


대구 달서구에 거주하는 근육장애인 전오성(가명, 51세, 지체1급)씨가 누워있는 모습.ⓒ에이블뉴스에이블포토로 보기 대구 달서구에 거주하는 근육장애인 전오성(가명, 51세, 지체1급)씨가 누워있는 모습.ⓒ에이블뉴스
삶과 죽음의 경계.

대구 달서구에 거주하는 근육장애인 전오성(가명, 51세, 지체1급)씨가 11평 임대아파트에서 위태롭게 하루하루 버텨나가고 있습니다.

근이양증으로 24시간 인공호흡기를 낀 채 살아가는 오성 씨는 식사와 신변처리 등 일상생활은 물론, 욕창과 수시로 가래가 차서 5분마다 한 번씩 석션 행위까지 해줘야 하는 최중증장애인입니다.

점점 굳어져가는 몸으로 재작년부터는 식사조차 하지 못해, 배에 구멍을 내 호스로 고단백식을 섭취하고 있는데요. 독거로 생활하는 그의 곁에는 가족도 아닌, 활동지원사 임 모 씨(47세, 여)만이 지키고 있습니다.

임 씨는 호흡기를 떼면 살아갈 수 없는 오성 씨를 떠날 수 없어, 월 460시간의 활동지원시간 외에도 자원봉사로 24시간을 케어, 2014년부터 무려 5년간 자신의 생활도 잊은 채 활동지원에만 몰두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군인인 임 씨의 아들은 휴가 때면 자신의 집이 아닌, 오성 씨의 집으로 온다고 합니다.

왜 퇴근도 안하고, 가족도 아닌 활동지원사가 집에도 가지 않고 그렇게까지 일을 해야 하는지, 손가락질도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요. 기자 또한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임 씨는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잠시라도 제가 없으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환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요. 잠시라도 눈을 뗄 수 없습니다.”



임 씨는 오성 씨의 집에서 5년간 그를 케어하고 있다. 오성 씨의 집 내부 모습.ⓒ에이블뉴스에이블포토로 보기 임 씨는 오성 씨의 집에서 5년간 그를 케어하고 있다. 오성 씨의 집 내부 모습.ⓒ에이블뉴스
물론 혼자서 케어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활동지원사를 구해달라고 수차례 요구도 해봤답니다. 하지만 인공호흡기를 낀 채 24시간 살아가는 오성 씨의 모습을 보고, 몇 분의 활동지원사가 겁을 먹고 자진 포기한 채 떠났습니다.

시‧군‧구, 중개기관에도 요청했지만, 너무 중증이라 활동지원사를 구하기 어렵다고, 차라리 요양병원에 들어가는 게 낫지 않겠냐고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살다보니 5년이 흘렀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최근 오성 씨가 대구시로부터 최중증장애인 대상 24시간 활동지원 대상자로 선정되며 벌어졌습니다. 월 880시간으로 2배 정도 시간이 늘었지만, 어쩐 일인지 하루하루 신음이 깊어져만 갑니다.

바로 ‘근로기준법’ 때문입니다. 임 씨는 5년간 집 안에서만 일하며 노동법은 남의 일이기만 한 줄 알았고, 들어본 적도 없었습니다.

지난 1월 말 주민센터로부터 전화로 24시간 활동지원 대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만 듣고, 어떠한 지침도 알려주지 않아 기존과 같이 근무시간에 바우처 카드를 결제했는데요. 이번 달 초 두 곳 중 한 곳의 중개기관에서 “카드를 찍지 마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부랴부랴 다른 곳의 중개기관, 주민센터에 확인을 해봤더니, 노동법에 걸린다는 청천벽력 같은 대답이었습니다. “왜 그런 것이냐”고 따져 묻자, 그때서야 대구시로부터 내려온 지침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2019년 장애인활동지원 대구시 추가지원사업계획 내용.ⓒ한국근육장애인생존권보장연대에이블포토로 보기 2019년 장애인활동지원 대구시 추가지원사업계획 내용.ⓒ한국근육장애인생존권보장연대
지침 속 ‘활동지원인력의 자격요건’ 속 근로 조건에 ‘개정 근로기준법을 준수하여 활동지원인력과 근로계약 체결’, ‘야간 활동지원의 졸음, 업무 태만 등을 방지하기 위해 4시간 단위로 바우처 이용 결제’ 등의 내용이 담겨있었습니다.

개정 근로기준법이라는 즉 슨, 장애인활동지원사업이 포함된 사회복지사업이 근로‧휴게시간 특례업종에서 제외되며, 근로시간이 1일 8시간, 1주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으며, 합의로 1주 12시간 한도 내에서 연장근로를 할 수 있다는 소리였습니다.

주 52시간, 한 달 총 208시간까지 근로해야 하는데, 이를 초과해 근무했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임 씨는 오성 씨의 장애가 너무 심해 떠날 수 없고, 다른 활동지원사를 구해달라고 요청해도 구할 수 없던 상황에서 범법자까지 내몰렸다고 호소했습니다. 임 씨는 “그냥 계속 이용자랑 마음 편하게 일하고 싶어요. 생명이 우선입니다”라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중개기관 측은 오성 씨의 현실을 이해해 구청 관계자 등과 협의해 4군데 중개기관을 둬서 기존과 같이 활동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해결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오성 씨의 장애가 너무 중증이라, 활동지원사를 구할 수 없어 임 씨 혼자 그를 돌볼 수밖에 없는 현실도 이해한다고 했습니다. 노동법을 지키면서 오성 씨를 돌볼 수 있는 방법은 이 것 뿐이라 했습니다.

“이 분이 880시간이라서 기관을 4군데 두고 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어요. 개정된 근로기준법 자체가 활동지원과 맞지 않는 게 현실이죠. 특례조항으로 다시 돌아가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4군데 기관을 이용할 수밖에요. 다른 활동지원사를 구할 수도 없고 정말 난감하고 방법이 없죠. 그분들의 딱한 심정은 이해합니다.”

그러나 임씨는 어렵게 마련된 해결책에도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것 같다. 언제 조사가 들어올지 모르는 것 아니냐. 지금은 안 해도 언제든지 오면 불안해서 어떻게 사냐”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오성 씨 또한 이번 사건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병세까지 악화된 상태라고 했습니다.

임 씨는 이 같은 내용을 한국근육장애인생존권보장연대에 알렸고, 연대 측은 임씨로부터 위임받아 지난 25일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에 이어, 26일 청와대 국민청원(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74157?navigation=petitions)에도 글을 게시한 상태입니다.



‘5년간 집에도 못가며 24시간 장애인을 돌본 저는 범죄자가 되었습니다’ 국민청원 게시글 캡처.ⓒ청와대 홈페이지 캡쳐에이블포토로 보기 ‘5년간 집에도 못가며 24시간 장애인을 돌본 저는 범죄자가 되었습니다’ 국민청원 게시글 캡처.ⓒ청와대 홈페이지 캡쳐
“지난 5년간 한 사람의 목숨을 위해 헌신한 일이 한순간에 부정한 일로 만드는 지금의 법과 제도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개정된 근로기준법에 따라 당장 제가 근무를 못하게 되면 제 이용자는 일상생활은 물론이고 생명유지에 위험이 심각한 상황입니다. 활동지원사와 중증장애인을 이러한 위험으로 내모는 현 상황을 해결할 길이 없어 국민청원에 올리게 되었습니다.”

기자는 이 사건에 대해 취재하며 고민이 많았습니다. 현재 근로기준법활동지원사업 특성상 맞지 않는 상황임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혹여나 법 위반으로 인해 활동지원사와 그의 이용자에게 피해가 가게 될까봐. 또 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과 이용자의 딱한 사정 속에서 해결책을 찾지 못하는 중개기관과 주민센터, 구청 측이 더 난감한 상황에 빠져 결과적으로 그들의 활동지원이 제한될까봐란 우려였습니다.

하지만 오성 씨만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노동법으로 인해 혼란을 겪고 있는 현실을 묻어만 둬선 안 된다고 생각해 최대한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싣고자 노력했습니다.

당장 300인 이상 사업장은 이번달말 계도기간이 끝남에 따라 다음 달 본격 시행되며, 이후 내년에는 50인 이상 299인 이하 사업장, 2021년 7월부터는 5인 이상 전 사업장에 단계적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현장에서는 오히려 휴게시간보다 노동시간 단축 문제가 더 큰 혼란이 올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임 씨는 말합니다. “대다수가 기피하는 인공호흡기 최중증장애인을, 24시간 돌보는 활동지원사를 불법으로 몰아 범죄자로 만드는 게 근로기준법의 목적은 아니잖아요.”

노동자의 장시간 노동을 막기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이 오히려 최중증장애인의 삶을 옥죄고 있다면, 또 그들의 활동지원사, 나아가서는 중개기관을 범법자로 내몰게 돼 결국 당사자에게 그 피해가 돌아오게 된다면 그들은 누구에게 호소해야 될까요?



지난해 7월 고위험희귀난치근육장애인생존권보장연대가 국회 앞에서 장애인활동지원사업이 근로기준법 특례적용 제외에 반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에이블뉴스DB에이블포토로 보기 지난해 7월 고위험희귀난치근육장애인생존권보장연대가 국회 앞에서 장애인활동지원사업이 근로기준법 특례적용 제외에 반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에이블뉴스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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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기 기자 (lovelys@abl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