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경계, 최중증장애인 절규
5년간 활동지원사와 생활, 노동법 개정 ‘목숨 위협’
“중증장애인 생명권 보장” 국민청원·인권위 진정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9-03-28 17:20:46
삶과 죽음의 경계.대구 달서구에 거주하는
근육장애인 전오성(가명, 51세, 지체1급)씨가 11평 임대아파트에서 위태롭게 하루하루 버텨나가고 있습니다.
근이양증으로 24시간 인공호흡기를 낀 채 살아가는 오성 씨는 식사와 신변처리 등 일상생활은 물론, 욕창과 수시로 가래가 차서 5분마다 한 번씩 석션 행위까지 해줘야 하는 최중증장애인입니다.
점점 굳어져가는 몸으로 재작년부터는 식사조차 하지 못해, 배에 구멍을 내 호스로 고단백식을 섭취하고 있는데요. 독거로 생활하는 그의 곁에는 가족도 아닌,
활동지원사 임 모 씨(47세, 여)만이 지키고 있습니다.
임 씨는 호흡기를 떼면 살아갈 수 없는 오성 씨를 떠날 수 없어, 월 460시간의 활동지원시간 외에도 자원봉사로 24시간을 케어, 2014년부터 무려 5년간 자신의 생활도 잊은 채 활동지원에만 몰두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군인인 임 씨의 아들은 휴가 때면 자신의 집이 아닌, 오성 씨의 집으로 온다고 합니다.
왜 퇴근도 안하고, 가족도 아닌
활동지원사가 집에도 가지 않고 그렇게까지 일을 해야 하는지, 손가락질도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요. 기자 또한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임 씨는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잠시라도 제가 없으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환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요. 잠시라도 눈을 뗄 수 없습니다.”
물론 혼자서 케어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활동지원사를 구해달라고 수차례 요구도 해봤답니다. 하지만 인공호흡기를 낀 채 24시간 살아가는 오성 씨의 모습을 보고, 몇 분의
활동지원사가 겁을 먹고 자진 포기한 채 떠났습니다.
시‧군‧구, 중개기관에도 요청했지만, 너무 중증이라
활동지원사를 구하기 어렵다고, 차라리 요양병원에 들어가는 게 낫지 않겠냐고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살다보니 5년이 흘렀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최근 오성 씨가 대구시로부터 최중증장애인 대상 24시간 활동지원 대상자로 선정되며 벌어졌습니다. 월 880시간으로 2배 정도 시간이 늘었지만, 어쩐 일인지 하루하루 신음이 깊어져만 갑니다.
바로 ‘
근로기준법’ 때문입니다. 임 씨는 5년간 집 안에서만 일하며 노동법은 남의 일이기만 한 줄 알았고, 들어본 적도 없었습니다.
지난 1월 말 주민센터로부터 전화로 24시간 활동지원 대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만 듣고, 어떠한 지침도 알려주지 않아 기존과 같이 근무시간에 바우처 카드를 결제했는데요. 이번 달 초 두 곳 중 한 곳의 중개기관에서 “카드를 찍지 마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부랴부랴 다른 곳의 중개기관, 주민센터에 확인을 해봤더니, 노동법에 걸린다는 청천벽력 같은 대답이었습니다. “왜 그런 것이냐”고 따져 묻자, 그때서야 대구시로부터 내려온 지침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지침 속 ‘활동지원인력의 자격요건’ 속 근로 조건에 ‘개정
근로기준법을 준수하여 활동지원인력과 근로계약 체결’, ‘야간 활동지원의 졸음, 업무 태만 등을 방지하기 위해 4시간 단위로 바우처 이용 결제’ 등의 내용이 담겨있었습니다.
개정
근로기준법이라는 즉 슨, 장애인
활동지원사업이 포함된 사회복지사업이 근로‧휴게시간
특례업종에서 제외되며,
근로시간이 1일 8시간, 1주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으며, 합의로 1주 12시간 한도 내에서 연장근로를 할 수 있다는 소리였습니다.
주 52시간, 한 달 총 208시간까지 근로해야 하는데, 이를 초과해 근무했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임 씨는 오성 씨의 장애가 너무 심해 떠날 수 없고, 다른
활동지원사를 구해달라고 요청해도 구할 수 없던 상황에서 범법자까지 내몰렸다고 호소했습니다. 임 씨는 “그냥 계속 이용자랑 마음 편하게 일하고 싶어요. 생명이 우선입니다”라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중개기관 측은 오성 씨의 현실을 이해해 구청 관계자 등과 협의해 4군데 중개기관을 둬서 기존과 같이 활동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해결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오성 씨의 장애가 너무 중증이라,
활동지원사를 구할 수 없어 임 씨 혼자 그를 돌볼 수밖에 없는 현실도 이해한다고 했습니다. 노동법을 지키면서 오성 씨를 돌볼 수 있는 방법은 이 것 뿐이라 했습니다.
“이 분이 880시간이라서 기관을 4군데 두고 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어요. 개정된
근로기준법 자체가 활동지원과 맞지 않는 게 현실이죠. 특례조항으로 다시 돌아가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4군데 기관을 이용할 수밖에요. 다른
활동지원사를 구할 수도 없고 정말 난감하고 방법이 없죠. 그분들의 딱한 심정은 이해합니다.”
그러나 임씨는 어렵게 마련된 해결책에도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것 같다. 언제 조사가 들어올지 모르는 것 아니냐. 지금은 안 해도 언제든지 오면 불안해서 어떻게 사냐”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오성 씨 또한 이번 사건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병세까지 악화된 상태라고 했습니다.
임 씨는 이 같은 내용을 한국
근육장애인생존권보장연대에 알렸고, 연대 측은 임씨로부터 위임받아 지난 25일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에 이어, 26일 청와대 국민청원(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74157?navigation=petitions)에도 글을 게시한 상태입니다.
“지난 5년간 한 사람의 목숨을 위해 헌신한 일이 한순간에 부정한 일로 만드는 지금의 법과 제도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개정된 근로기준법에 따라 당장 제가 근무를 못하게 되면 제 이용자는 일상생활은 물론이고 생명유지에 위험이 심각한 상황입니다. 활동지원사와 중증장애인을 이러한 위험으로 내모는 현 상황을 해결할 길이 없어 국민청원에 올리게 되었습니다.”기자는 이 사건에 대해 취재하며 고민이 많았습니다. 현재
근로기준법이
활동지원사업 특성상 맞지 않는 상황임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혹여나 법 위반으로 인해
활동지원사와 그의 이용자에게 피해가 가게 될까봐. 또 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과 이용자의 딱한 사정 속에서 해결책을 찾지 못하는 중개기관과 주민센터, 구청 측이 더 난감한 상황에 빠져 결과적으로 그들의 활동지원이 제한될까봐란 우려였습니다.
하지만 오성 씨만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노동법으로 인해 혼란을 겪고 있는 현실을 묻어만 둬선 안 된다고 생각해 최대한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싣고자 노력했습니다.
당장 300인 이상 사업장은 이번달말 계도기간이 끝남에 따라 다음 달 본격 시행되며, 이후 내년에는 50인 이상 299인 이하 사업장, 2021년 7월부터는 5인 이상 전 사업장에 단계적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현장에서는 오히려 휴게시간보다 노동시간 단축 문제가 더 큰 혼란이 올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임 씨는 말합니다.
“대다수가 기피하는 인공호흡기 최중증장애인을, 24시간 돌보는 활동지원사를 불법으로 몰아 범죄자로 만드는 게 근로기준법의 목적은 아니잖아요.” 노동자의 장시간 노동을 막기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이 오히려 최중증장애인의 삶을 옥죄고 있다면, 또 그들의
활동지원사, 나아가서는 중개기관을 범법자로 내몰게 돼 결국 당사자에게 그 피해가 돌아오게 된다면 그들은 누구에게 호소해야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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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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